아동문학코너/평론

단평--김해등 동화집 『발찌결사대』

숲속니라 2014. 1. 6. 00:10

 

가슴을 뻥 뚫리게 하는 이야기

-김해등 동화집 발찌결사대

 

                                                                                                      박금숙(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

 

 

  “선생님, 가슴 뻥 뚫리는 동화 없나요?”

아이들에게 매주 읽을 동화책을 골라 줄 때마다 듣는 말이다. 자기들의 생활도 우울하고 답답한데 동화 속에 나오는 아이들은 자기들보다 더 답답하고 억눌린 생활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 숨이 콱 막히고 오히려 스트레스가 쌓인다고 했다. 이런 아이들을 위해 될 수 있으면 많은 책을 읽고 선별하려는 내게 바로 이거야!’ 하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김해등의 발찌결사대(샘터, 2013)이다. 이 책이라면 아이들의 가슴을 뻥 뚫어 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 동화집에는 2회 정채봉 문학상 대상수상작인 발찌결사대를 비롯하여 마술을 걸다, 탁이, 운동장이 사라졌다, 이렇게 총 네 편의 중·단편 작품이 실려 있다.

  「발찌결사대이야기에 나오는 주인공 초록목과 발찌결사대대원들은 모두 상처를 안고 있다. 그 상처란 새임에도 불구하고 날지 못하는 상처이다. 독재자 검은혹부리는 모이를 던져 주는 인간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날개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구구 뒤뚱법을 만들었다. 또 알을 낳지 못하게 하기 위해 애벌레처럼 생긴 먹이로 무리를 제압한다. 초록목은 더 이상 닭둘기의 삶이 아닌 비둘기다운 삶을 위해 비열한 권력에 대항하는 모임을 꾸린다. 그렇게 해서 생긴 모임이 발찌결사대이다. 어린이판 동물 농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지금의 세태를 묵직하게 전하는 주제의식뿐만 아니라 우화의 장점을 적절히 살려 읽는 재미 또한 놓치지 않았다. 또한 동물들의 소리 없는 외침을 통해 동물과 인간이 대등하지 않다는 인간 중심 사상을 비꼬고 있는 마크 베코프의 동물 권리 선언(미래의창, 2011)과도 일맥상통하는 작품이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 우리의 모순된 현실이 떠올라 가슴 밑바닥이 아리고 씁쓸하다. 88올림픽 때 평화의 상징으로 많은 비둘기들을 날려 보냈다. 그 후 비둘기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자 그 수를 줄이기 위해 비둘기 굶기기 작전을 하고 불임 먹이를 주기도 했다. 이처럼 도시에서 살고 있는 비둘기들은 날개가 있어도 날 수 없는 생을 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날지 못하던 초록목과 발찌 결사대원들이 경찰 비둘기들의 추적을 피해 하늘로 날아오르는 장면에서 환호성을 지를 것이다.

 「마술을 걸다에 나오는 주인공 만수는 만수 세탁소집 늦둥이다. 만수 엄마가 나이 쉰에 죽을 둥 살 둥 간신히 낳은 유만수, 하지만 만수는 자기 이름이 불만이다. 또 늦둥이로 태어났기 때문에 엄마가 다른 엄마들보다 나이가 많은 게 싫다. 그래서 전학 간 날, 반 아이들에게 마술을 보여 주며 유건라라는 이름으로 불러 달라고 한다. 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 만수처럼 이름 때문에 놀림을 받는 아이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소소한 이야기지만 아이들이 무엇을 부끄러워하는지 세심하게 관찰한 결과의 산물이라 그런지 이야기의 면면이 참 맛깔스럽다. 그리고 만수가 결국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모습을 유쾌하면서도 자연스럽게 그린 점이 이 작품의 매력이라 할 수 있다. 이름이나 부모님의 나이 때문에 고민했던 적이 있는 어린이라면, 만수가 첫눈에 반했던 유리에게 마술쇼로 인정을 받고 마침내 유리의 마음을 얻게 되는 결말에서 충만감을 느낄 것이다.

  「탁이는 생명에 대한 신비함과 따뜻함이 담겨 있는 한 편의 영화와 같은 작품이다. 준호는 아빠가 사업을 하다 생긴 사고로 감옥에 가자 서울을 떠나 시골로 전학을 간다. 그런데 첫날부터 오달동이란 친구와 싸움을 하게 된다. 그 사실을 담임 선생님이 할아버지한테 알리는 바람에 준호는 매 맞을 회초리를 찾아 대숲으로 간다. 그곳에서 알을 품고 있는 암탉 탁이를 만나게 되고, 준호의 머리는 온통 대숲의 탁이와 알 생각으로 가득 차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준호만의 비밀이 된다.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자신만의 보물이나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딱지나 장난감, 자신만이 알고 있는 구석지고 낯선 공간 등 아이들의 마음 한편엔 어른들은 모르는 낯선 세계가 펼쳐지고, 이러한 것들을 목숨처럼 귀중하게 여긴다. 이 작품의 주인공 준호의 보물과 비밀은 대숲에서 암탉이 품고 있던 열일곱 개의 알이다. 그 보물들이 생명의 탄생으로 이어져 마침내 비밀의 장소를 나왔을 때의 경이로움은 비밀을 간직해 본 어린이들만이 느낄 수 있는 환희일 것이다. 서정적이면서 시적인 이야기에 가족과 생명의 소중함이 오롯이 담겨 있는 동화이다.

  「운동장이 사라졌다는 판타지 동화로 김해등 작가만의 독특한 상상력과 목소리를 두드러지게 느낄 수 있어서 신선하게 다가왔다. 유능한 교장 선생님이 온 뒤로 학교 운동장에는 아이들이 한 명도 나와서 놀지 않는다. ‘아이들의 공부가 방해되는 것은 뭐든 없앴고 성적을 올리는 일이라면 학원이든 과외든 말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쓸데없는 일에 관심이 많고 아이들에게 탐정이라고 불리는 주인공 에게 괴상한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학교에 지진이 나더니 집채만 한 파도가 교실로 밀려온다. 이 동화는 릴레이를 하듯 학원에서 학원으로 옮겨 다니느라 너무나 바쁜 요즘 아이들의 일상을 풍자한 작품이다. 그래서 부모들이 꼭 한번은 읽었으면 하는 동화이다. 그리고 이 작품을 읽은 어린 독자들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운동장이 하고 있네!’라고 생각하며 속시원해할 것이다.

이 책이 처음부터 눈에 들어온 것은 아니다. ‘2회 정채봉 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라고 해서 호기심에 애써 읽어 보기로 마음먹었지만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독자들이 언뜻 성범죄자들에게 채우는 전자발찌를 연상할 수도 있는 다소 생경한 제목과 낡고 세련돼 보이지 않는 표지화 때문이었다. 그래서 다른 책들을 다 본 뒤 맨 마지막에 읽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읽고 보니, 작품마다 품고 있는 마음과 정신이 아이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들이었다. 이 책을 읽은 아이들의 가슴이 뻥 뚫려 시원해지고 따뜻한 온기로 충만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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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금숙 :

1962년 관동팔경 중의 하나인 청간정이 있는 강원도 고성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11<어린이와문학>에 평론 권정생 동화와 시대정신2012<창비어린이>에 비평 진짜 고한승의 사진 한 장등을 발표했고, 2013<아동문학평론>에 동시별똥별을 찾아라3편이 당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