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문학코너/평론

삼성을 다시 생각한다

숲속니라 2012. 11. 5. 01:16

<어린이와 문학 2012년 11월호 149~155쪽>

 

                                       삼성을 다시 생각 한다

                                                                      -생각을 바꾸는 만화 김성희의『먼지 없는 방』-

                                                                                                                                                   박금숙: 2000pgs@hanmail.net

 

오, 삼성~!

 

한 때 ‘삼성’이란 말을 들으면 어깨가 으쓱해지고 괜히 뿌듯해질 때가 있었다. 또 남대문 쪽으로 차를 타고 지나갈 때면, 동방플라자 옆에 있는 삼성의 하얀 본사 건물을 보기 위해 차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야릇한 미소를 짓기도 했다. 그 이유는 대학을 갓 졸업한 막내 동생이 그 어렵다던 삼성그룹에 취직을 했기 때문이다.

삼성에 입사 후, 동생은 가끔 월급 외에 삼성가전제품들을 보너스로 받아가지고 와서 나누어 주어 가족들을 기쁘게 해주었다. 뿐만 아니라 삼성맨이 누릴 수 있는 복지 혜택은 그 가족들에게도 돌아갔기 때문에 한 사람이 삼성맨이면 그 가족 모두 삼성맨이라도 된 듯,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의 삼성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했다. 식구들은 모두 삼성에서 나오는 가전제품들만 구입해서 썼다. 삼성의 또 다른 장점은 어느 기업과도 비교할 수 없이 친절한 에프터써비스다. 상담원들의 상냥한 목소리와 고객이 만족한다고 할 때까지 최선을 다하는 태도에서 우리 가족 모두는 삼성의 주인이면서 매니아가 되었다.

몇 년 후, 사내 결혼을 한 동생은 그 둘이 가지고 있는 직원보유의 주식이 올라, 그것만으로도 먼저 결혼한 형이나 누나들보다 부자가 되었다. 그것은 “오, 삼성~!”이라고 생각했던 우리의 믿음을 더 확고하게 심어주었다. 그런 동생네를 본 터라 조카들까지도 장래의 희망이 삼촌처럼 ‘삼성맨’이 되는 것이었다. 명절이 되어 가족끼리 만나게 되면 조카들은 삼촌의 삼성 정신을 한 두 마디 들어야 했다. 원래부터 유머가 뛰어난 동생은 삼성의 그 정신을 착실하게 지키느라 자신의 살이 점점 빠져가고 있다는 농담을 해서 가족들을 웃기곤 했다. 내가 보기에도 동생의 그 통통하던 얼굴은 살이 많이 빠져 있었고, 눈은 언제 보아도 충혈되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자랑스럽던 동생이 암으로 삼성 병원에 입원을 했다.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은 모두 놀랐다. 다행이 동생은 수술이 잘 끝났고 위암 초기라는 병원의 진단에 우리는 안도감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동생은 병원에서도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그 이유는 동생의 직장 동료들과 상사들까지도 가족처럼 염려해주고 잘 챙겨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생은 병원에서 퇴원한 후, 자신의 건강을 위해 그 좋은 직장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했다. 높은 월급과 복지후생을 잘 받는 것만큼이나 업무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삼성은 퇴사이후에도 그 이름값을 했다. 삼성에서 일했다는 이유만으로도 다른 기업에서 인사처리나 승진에서 더 높은 점수를 땄다. 삼성에서 배운 정신이 있기에 다른 사람들 보다 업무처리가 뛰어나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동생은 현재 모그룹에서 예전보다는 좀 더 편안하게 일하고 있다. 동생의 몸도 많이 좋아졌고, 항상 충혈 되어 있던 눈은 다시 건강한 눈으로 돌아왔다. 동생의 병이 심한 스트레스를 받던 삼성의 업무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오비이락(烏飛梨落)식으로 원래 건강이 나빠서 그랬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삼성을 떠난 지금 동생은 예전처럼 살이 오르고 얼굴색이 좋아졌다는 것은 사실이다.

 

삼성의 두 페르조나

 

김성희 작가의 『먼지없는 방』은 실화를 바탕으로 그려낸 만화책이다. 이 책은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일하고 있던 사람들과, 그 가족들이 산재인정과 관련된 일들의 발생부터 재판 종결까지에 있었던 일을 그리고 있다. 즉, 반도체 칩을 만드는 각각의 공정과 거기에 사용되는 각종 유기용제, 그것을 다루다 백혈병을 얻어 사망한 젊은이들, 또는 질병을 얻은 이들이 그 죽음과 질병을 산업재해로 인정받기 위해 세계적 거대기업 삼성과 힘겨운 싸움을 벌인 가족들 이야기인 것이다. 그들이 사용한 유기용제의 위험성과 위해성을 감추자 했던 삼성전자 반도체, 그들의 싸움을 방해하거나 방관하는 자들과, 그 가족을 도와주는 사람들의 모습은 이 책에서 생생하게 표현된다.

여상을 갓 졸업하고 최일류 삼성맨이 되어서 꿈을 안고 서울로 올라간 정애정씨는 연수를 받고 나온 후 뇌가 교체되어 나왔다.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안전이다.‘ 그녀의 뇌리에는 그 말이 박혔고, 삼성에 대한 자부심과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클린룸을 최첨단 시스템으로 최상의 작업환경이 제공되도록 방진복을 갈아입고 에워샤워를 했다. 또 화장을 하지 않았고, 셋 이상 모여서 있지도 않았으며, 뛰지도 않았으며, 고함 등 큰소리도 내지 않았다. 오직 로봇처럼 일만했을 뿐이다. 그것은 나를 위한 게 아니라 바로 삼성을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런 환경에서 만난 사람과 결혼을 했고, 남편이 된 그 사람도 자신의 건강을 지키는 것보다는 삼성을 위해 더 열심히 일했다. 그런 남편이 백혈병으로 죽어갔고 같이 일하던 친구도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그 삼성은 나 몰라라 했고 병의 원인이 그런 작업환경이 아니라고 했다. 오히려 삼성백혈병이 직업병이라고 규명을 하기위해 뛰어다니는 피해자에게 이방인 취급을 했고, 자식 잃은 부모 앞에서는 돈 얘기만 하며 괴롭혔다.

대한민국의 발전과 경제부흥을 국민과 세계에 알리는데 널리 이용되어 온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의 풍경들을 생각해 본다. 하얀 방진복을 입고, 방진 장갑에 마스크를 쓰고 작업장을 걸어 다니거나, 스코프를 보고 있는 근로자의 모습은 공익광고나 국정 홍보용 등의 이름으로 자주 우리 앞에 나타난다. 더 할 수 없이 깨끗해 보이는 작업장, 밝은 웃음을 지어보이는 젊디젊은 여직원, 우리에게 보여지는 그런 외관이 실은 그곳에서 근무하는 사람을 위한 게 아니었다. 그것은 수율을 높이기 위해, 제품의 불량을 줄이기 위해, 순전히 제품을 위한 조치라는 사실을 이제나마 알려준 것이다

작업방(베이)에서 사용되는 마스크가 근로자의 코로 흡입되는 몹쓸 가스나 물질을 걸러내기 위해 착용하는 것이 아니라 근로자가 배출하는 공기로 인한 제품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지급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얼마나 될까? 또 그곳에서 근로자들의 복장이 그들을 위험에서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소위 ‘황금알을 낳는 모래빵’ 의 품질 유지를 위해 지급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적어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삼성’, 이 단어를 떠올리면 대한민국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이미지로 새겨진 삼성을 떠올릴 것이다. 취업을 바라는 젊은이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고,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삼성이란 로고에 대단한 자부심을 지니고 살고 있다. 그 가족 역시 많은 월급과 복지정책에 만족해하였다. 뿐만 아니라 하청업자들은 삼성과 거래를 위해 또 얼마나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는가. 해외에 나가면 대한민국은 몰라도 삼성을 아는 외국인이 많은 것에 놀라기도 한다. 유럽을 여행한 사람이면 한번쯤은 느껴볼, 그 나라의 중심 도시 중앙에 나붙은 삼성의 대형광고는 이방인의 입장에서 얼마나 뿌듯함을 느끼게 했는지. 한마디로 우리들에게 부러움과 뿌듯함으로 각인된 그 ‘삼성’이 사실은 근로자의 건강이나 생명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부도덕한 대기업이라니……. 삼성의 감춰진 패르조나에 충격과 놀라울 뿐이다.

책을 읽어 나갈 때 일부 언론기자나, 관련 공무원들이 피해자 가족에게 행한 행위를 지적한 부분에서 왜 나는 “삼성장학생” 이란 단어가 떠올랐을까? 이미 김용철 변호사를 통해 알려진 “평소에 삼성의 지원을 받고 훗날 지원의 대가로 삼성을 음으로 양으로 비호” 하는 언론인, 정치인, 관료를 통틀어 ‘삼성 장학생’ 으로 불렀다는 그 삼성 장학생이 이 사건에서도 삼성의 부탁으로, 아니면 자신들 스스로 삼성을 위해 부탁도 하지 않았는데 알아서 챙긴 것인지 궁금했다. 그리고 약자들이 강자들 앞에서 일방적으로 강요당해야 하는 게 고쳐지지 않고 있는 이 사회구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머리가 아파왔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쉬운 점은, 만화책으로써 조금 난해했다는 것이다. 본래 만화책이라는 것은 글을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그림과 짧은 내용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전혀 알지 못했던 또 다른 세계를 이해하기에는 전문용어나 근로자들의 대화가 너무 낯설었다. 반도체 칩의 완성을 위해 작업장(베이)과 서비스에어리어에서 작업 공정 중에 사용되는 유기용제들에 대한 세밀한 설명 역시 부족했다고 생각된다. 이들 용제들이 일으킨다고 보고된 각종 질병이나 부작용들을 좀 더 심각하게 바라보고 경고의 메시지를 강하게 표현하지 못한 부분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특히 직업병과 산업재해 등의 문제에서 앞으로 당사자가 될지 모를 아동이나 청소년들이 읽기에는 다소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재판의 진행과정을 좀 더 자세히 표현하지 못한 점도 못내 아쉽다. 재판에서 삼성이 어떤 주장을 하였고, 그 주장이 얼마나 부도덕하고 비양심적이며 대기업 우선 정책을 펼치고 있는 정부의 주장과 닮았는지를 그렸어야 했다. 그리고 이에 대해 피해자들은 어떤 주장을 하였으며, 그 주장을 통하여 산업재해란 무엇이고, 반도체 작업 공정에서 사용되는 각종의 유기용제들의 유해성과 피해자들의 발병에 관하여 법원은 어떤 판단을 하였는지를 구체적이고 현실감 있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이해하기 쉽게 기술하였더라면 더 좋았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삼성~!

 

뜻하지 않은 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의 심정이란 어떤 것일까? 더구나 망인 본인도 왜 자신이 죽음을 당했는지,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 간 원인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위해 성실하게 일만했는데 그 결과가 직업병에 의한 죽음으로 나타났다면 죽어서도 얼마나 억울할까? 나아가 자신의 전부를 쏟아 부은 그 회사가 이런 사실을 숨기고자 갖은 방법을 동원하여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을 방해하였다면, 또 이런 모든 사정을 알아차린 가족들은 어떤 심정이 될까? 만약, 이 책의 주인공 정애정씨의 남편 황민웅씨가 필자의 남동생처럼 일찍 삼성에서 나와 다른 곳에서 일했더라면 과연 죽음까지 갔을까? 몇 년 전, 동생이 자신의 두 아이 머리를 만지며 “너희들을 위해서라도 아빠가 수술 잘 받고 나와서 오래오래 살아야겠지”말하며,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수술실로 들어가던 동생의 모습이 『먼지없는 방』의 황민웅씨 얼굴과 겹쳐 가슴이 저려온다.

“아, 삼성!” 이제 삼성이 그들에게서 무엇을 빼앗아 갔는지 분명히 알게 되었다. 그들은, 남들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살았던, 조금 더 나은 인생을 살기 위해 노력하면서 사랑을 가지고 꿈꾸며 살아간 사람들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아 갔다. 또 삼성을 위해 열심히 일하다 고통의 병을 얻은 것을 단순한 사건과 개인의 질병으로 치부함으로써 그들의 인생과 사랑, 그리고 희망마저도 송두리째 빼앗아 간 것이라는 것을 이 책은 분명히 말해주고 있다.

『먼지없는 방』출판 후, 광고도 잘 실어 주지 않는 파렴치한 우리 사회에서 고황민웅씨의 아내 정애정씨가 거대 기업 삼성과 근로복지공단과의 치열한 싸움으로 얼마나 좌절했을까를 생각해보았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동생으로 인해 삼성에 대한 자부심을 느꼈던 내가, 파렴치한 사회의 한 구성원에 속해있으면서 아무 소리도 못하고 힘이 되어주지 못하는 우리가, 한없이 부끄럽고 작게 느껴진다.

                                                                                -끝-

 

 

박금숙은 강원도 고성의 작은 어촌마을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대학원과 건국대학교 대학원 두 곳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현재는 고려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으며 아동문학을 전공하고 있다. 쓴 논문으로는 「권정생초기동화연구」,「강숙인 역사동화 연구」가 있다.